2013.04.30 05:07

봄날에 오신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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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풀리고 흙이 더워지면 하 늘은 새들의 노래로 흘러 넘치고 대지는 온갖 꽃들로 곱게 수놓아 집니다. 이른바 봄의 향연이 이뤄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향연 이 그러하듯 봄날의 찬연한 향연 도 덧없이 사라지는 것임을 몸으로알고있습니다.

그래서다만 그윽한정취,애틋한향기와함께오 가는 봄을 속절없이 맞고 보내고 할 뿐입니다. 

이렇듯 봄날은 우리 에게 경이로운 꿈과 즐거움만을주는 것이 아니라 달랠 길 없는 아쉬움과 상심(傷心)도 함께 안겨줍니다.

‘달에 취해 빈번히 술잔을 비우고 꽃에 홀 려 님을 섬기지 않네(醉月頻中聖 迷花不事君)’라는 옛 시구가 있습니다. 

찬란한 봄날의 정취를 만끽하고자 하는 풍류어 린 삶의 욕구가 짙게 농축되어 있는 구절이라 할 수 있겠 지요. 
끝없이 봄을 노래하고자 하는 인간의 갈구가 이와 같음에도 봄은 인간에게 영원한 음풍농월(吟風弄月)의 복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봄은 우리로 하여금 소리 높여 자 신을 노래하게 합니다. 

그러나 봄은 그 노래가 시작되자마 자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지요. 이것은 분명 봄이 인간에게 안겨주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자, 지워지지 않는 상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봄날의 눈물과 상처는 끝까지 견딜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는 슬픔의 기원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봄마다 흥얼거리는 우리의 봄노래는 이 같은 슬픔이 낳는 아픈 메아리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고질병처럼 달고 사는 봄날의 슬픔은 여름의 고뇌, 가을의 상실감, 겨울의 고독감과는 뭔가가 다른 별난 감정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감이 봄날의 슬픔과 무관 하지 않고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봄땅에뿌려진한알의씨앗은여름더위를견디어내고,가을들 판에 쓰러져 눕고, 긴 겨울의 강을 건너야 하지요. 
우리가 계절에 따라 경험하는 계절 감정도 뗄 수 없는 인과의 고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소리입니다. 봄은 덧없이 지나가고 인간은 이 덧없음의 벌판 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지 위에 씨앗을 뿌립니다. 씨 뿌리지 않는 이 에게는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에게는 찬란한 봄날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몽롱한 봄 풍경속에 감춰진 이런 냉엄한 현실은 우리 의삶을두려움과 슬픔의 바다로 내몰아 세우지요.

부처님께서는 왜 꽃비가 흩날리고 슬픔과 두려움의 파랑(波浪)이 큰 골 을 이루는 봄날에 우리 곁에 오셨을 까를 생각해 봅니다. 
경전 말씀에 따 르면 불보살님들은 업보중생과는 달리 대비원력(大悲願力)으로 국토와 부모를 선택하신 뒤 세상에 태어 나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시점에 깃든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도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봄날은 음풍농월하기에는 한가한 시절만 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와는 달리 건강하고 기름진 땅을 골라 자신의 생명활동을 유지시켜 줄 좋은 씨를 뿌려야 하는 매우 엄중한 시 점이랄 수 있습니다. 봄날의 슬픔 이란 어쩌면 좋은 씨앗과 그 씨를 뿌릴만한 마땅한 땅에 목을 매어 야 하는 삶들이 운명적으로 공유 하는 매우 처연하고 절박한 감정 일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 간의 온갖 번뇌와 고뇌는 이 씨 뿌 리는 일과 함께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크던 작던, 물질적인 것이던 심리적인 것이던)은 원인 곧 씨앗이 없이 생겨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지요. 이런 점들을 사유해 볼 때 부처님께서 온갖 씨앗이 뿌려져 발아되는 봄날에 태어나셨다는 사 실은 비상히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 많은 일꾼들이 모여 일을 하는 농장에 들려 밥을 비신 일이 있습니다. 
그 때 농장 주인은 “여기는 농사짓는 일꾼들에게만 밥을 줍니다.”라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나도 농사를 짓 는다. 나도 땅을 갈아 씨 뿌리고 김을 맨다.....”는 세상에 회자하는 그 유명한 농사법문을 하시어 농장 주인의 귀의를 받게 됩니다. 

물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농사일은 마음의 밭을 갈아 지혜와 자비의 씨를 뿌리고 번뇌의 풀을 뽑는 일로 땅 위에서 벌어지는 농사와는 다른 별 개의 농사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농사와 부처님의 농사를 두고 그 중요성과 우열을 가르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점입니다. 부처님께 서는 농사법문을 통해 세상의 농사가 삶의 토대임을 역설하십니다. 그 렇다면 부처님께서 지으시는 농사는 우리 삶에 무슨 의미를 갖는 것 일까요?부처님은세상의농사가부처님의농사와함께할때가장온 전한 농사로 완성될 수 있음을 시사해 주고 계시지요. 산업농으로 심 각하게 땅이 오염되고 씨앗의 정보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져 가고 있는 절망적인 이 시대의 농업현실은 이 사실을 반증해 주는 좋은 실례가 될 것입니다.

농사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씨앗과 땅을 들 수 있겠지요. 불교에서는‘마음 땅(心地)’또는‘종자’라는 용어를 일찍부 터 사용해 삶의 구조와 문제점을 밝히고 해석해 왔습니다.‘심지’란 인식과 감정의 환경이나 바탕을,‘종자’는 그 내용을 이루는 구체적인 요소로서 요즘 우리가 이야기하는 생물학적 또는 문화적 DNA와 흡사한 개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불교의 농사법이란‘심지’와 ‘종자’의 관계를 명확하게 읽어내 그것을 건강하고 청정하게 보살피 고 가꾸어 나가는 일이 됩니다.

인도불교에서는 마음을 대지에 빗대어 부미(Bhumi)라 일컫기도 했습니다. 대지에서 온갖 화초와 나무가 자라 나듯 마음에서 온갖 인식과 감정이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땅이 오염되고 거칠어지면 초목이 자생할 수 없는 사막이 되고 말듯 만약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되면 일상의 인식과 감정도 조악하고 황폐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될 것입니다.

남아공화국의 작가 존 쿳시는 그의 노벨상 수상작인『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매우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백인제국 사람들이 야만인이라 부르는 아프리카 토착민들의 문화DNA 즉 그들 의 문화종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쿳시의 글에 따르면 아프리카 토착민들은 그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화나 조짐이 있으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대지에 귀를 대고 엎드려 백인제국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대지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입니 다. 
그들은 대지의 노래 소리며 신음 소리 심지어는 조상들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의미를 읽어내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합니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가상적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편적인 짧은 이야기 속에는 땅을 조롱하고 대지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현대문명이 경청해야 할 소중한 메시지 가 담겨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사람들은 대개가 행복을 바라고 불행을 원치 않습니다. 
물론 이런 의식은 아직 삶의 평정을 이루지 못한 상태인 거친 의식의 한 행태일 수 있습니다. 몽테뉴는 희망과 불행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삶의 최 고 가치로 삼았다고 하지요. 
자신의 존재 이유가 희망이나 행복 같은 따위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될 때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께서는 “네 마음 땅에 귀 기우리고 네 종자의 흐름에 깨어 있으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불자들이 깊이 간직하고 되새겨야 할 교조의 엄중한 가르침일 것입니다. 
삶의 문제를 너무 안이하고 관념적으로 진단하고 답하는 사이비 멘토링과 힐링이 극성을 부리는 요즘 이 아닌가 합니다. 
삶의 현실이 불안하고 힘겨울 때일수록 자신의 마 음 땅에 바짝 귀를 기우려 듣고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실질적인 위안 과 빛을 나누는 노력이 나와 세상을 밝게 변화시킬 수 있는 효모라는 믿음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은 왜 봄날에 오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나아가 씨앗과 땅 때문에 봄을 상실하고 끝없는 슬픔과 비탄에 빠진 뭇 삶들에게 자 비의 씨앗과 복된 땅을 함께 나누려 오신 부처님께 위없는 경배를 올 립니다. 

백거이의 시에 “애틋한 정 뭉개뭉개 향기 그리움 솔솔, 산승 도 번뇌에 겨워 출가를 후회하네.(芳情香思知多少, 惱得山僧悔出家)”라는 시구가있지요.

봄날은 끝내 가고야 맙니다. 가고 말 봄 그림자에 흔들려해야 할 봄일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것은 씨뿌리는 일입니다. 안으로 그 씨는 자비와 지혜이고, 밖으로 그 씨는 사회적 약자이기도 합니다.
자비와 지혜의 씨가 잠을 깨야 생명의 빛이 터져 나오고 사회적 약자가 살아나야 안락정토가 이뤄지겠지요.